신숭겸의 최후
2022. 4. 5. 21:51ㆍ카테고리 없음
신숭겸은 고려 태조 때의 무장이며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본래 전라도 곡성현 출신으로 태조가 평산에서 사성하였다고 한다.
후삼국 시대에 벌어진 공산 전투에서 고려군이 견훤의 후백제군에 의해 참패하여
왕건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신숭겸이 왕건의 투구와 갑옷을 대신 입고
미끼가 되어 후백제군을 유인하며 왕건이 탈출하는 사이에 힘껏 싸우다 결국 전사하였다.
후에 참수된 신숭겸의 시신을 찾은 왕건은 매우 슬퍼하며 시호를 장절(壯節)이라 하고
그의 아우 능길(能吉)과 아들 보(甫)를 모두 원윤(元尹)으로 삼고 지묘사(智妙寺)를 창건하여 그들의 복을 빌게 하였다.
994년(성종 13) 4월에 태사(太師)로 추증되어 태사 개국장절공(太師開國壯節公)으로 태묘(太廟)의 태조 사당에 배향되었다.
신숭겸묘가 3개..라고
전사할때 목이베여 돌아온 시신에 머리가 없는것을보고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장례를 치뤘다고....
도굴꾼들 방지책으로 묘를 3개만들었다는...
우리나라도 고려시대 바로전의 후삼국시대가 군웅할거(?)시대에 봉건시스템이었으니
무인집단도 많았고 캐릭터 잡기도 좋은데
이때를 왜 파지않는지 모르겠네유.
왜놈들 전국시대보다 재미지게 꾸며낼 스토리가 아주 많은디...
그다음은 무신정권시절이 재미질거고...